2004~5년 개그콘서트에서는 복학생이라는 캐릭터가 대인기였다. 이 캐릭터로 유세윤은 신인에서 일약 스타가 되었는데, 이 복학생캐릭터는 복학한 지 너무 오래되서 아직도 80년대 말~90년대초 스타일을 고수하는 학생을 흉내냈다. 80년대 말에 유행했던 고리바지를 뽐내고 'Step by step'으로 유명한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음악을 최신 음악이라고 너무 당당하게 자랑하는 복학생을 보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실소를 유발했다. 5~6년 전만 해도 90년대스타일은 단순히 웃기기 위한 소재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옛날 스타일은 항상 웃음이나 조롱거리의 소재가 되지는 않는다. 현대트렌드에 맞게 그럴싸하게 꾸미면 ‘복고’라는 스타일로 재탄생되어 훌륭한 시장성을 가진 상품이 될 수 있다. 특히 유행주기가 빠른 패션과 음악계에서 복고 컨셉이 즐겨 사용되고 있다. 최근 대중음악 중에서는 원더걸스의 '노바디'와 티아라의 '롤리폴리' 등이 복고 컨셉으로 나왔으며 다들 아시다시피 둘 다 대히트했다. 아, 소녀시대를 빼놓을뻔 했다. 소녀시대 노래 '훗'에서도 본드걸 컨셉을 내세웠으며 역시 소녀시대의 이름에 맞는 인기를 구가했다.
위의 세 가수의 특징을 예로 들자면, 원더걸스 노바디의 경우 60~70년대 미국의 모타운 컨셉으로 화려하고 반짝이는 드레스에 말아올린 머리가 특징이고, 소녀시대 훗은 너무나도 유명한 60년대 본드걸 컨셉으로 롱부츠와 딱붙은 의상, 원색적인 화장이 특징이며, 티아라의 롤리폴리는 우리 부모님의 학창시절인 70년대의 잘 노는 여고생 컨셉으로 각 팀마다 다른 개성을 뽐냈다.

예가 좀 부족한 감이 있는데 대체로 음악에서 복고 스타일은 대부분 60~80년대를 컨셉으로 하고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왜 90년대 컨셉을 하는 경우는 없을까? 지금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면 크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90년대에는 컴퓨터도 있었고 휴대폰도 보급되기 시작했고 지금도 잘 팔리는 자동차 브랜드도 이미 있었을 정도로 그 이전 시대와 비교해서는 시대적 차이가 적게 나는 것도있었고, 무엇보다 20대인 젊은 사람들조차도 생생히 기억하고있는 시대라 생소하거나 낯설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90년대 스타일에 ‘복고’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별로 옛날이 아니라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 우리가 ‘복고’라고 인식하는 시대 차이는 몇 십년 정도로 비교적 큰데, 반면 실제로 시대의 유행은 대략 10년 안쪽으로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변하기 때문에, 이 시간의 괴리가 우리로 하여금 90년대 유행한 음악이나 패션을유난히 촌스럽다고 여기게 만든다. 복고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옛날이 아니어서 신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2010년대와 비교하자면 유행에 뒤떨어져서 대중에게 지지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고 당당하게 90년대 스타일도 컨셉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말없이 소리치는 노래를 만날 수 있었다. 하나는 리얼한 복고 컨셉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UV의 '집행유애'이고, 또 다른 하나는 최근 떠오르는 아이돌그룹인' 인피니트'의 파라다이스이다.
일단 UV는 내놓는 곡마다 특징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나오는데, 최근에 나온 'Who am I' 같은 경우 60년대 비틀즈를 연상케했다. 마찬가지로 작년에 나온 집행유애의 경우 90년대 초중반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남긴, 90년대 대표그룹 듀스의 스타일을 차용했다. 물론 패러디 장르로 코믹성이 다분하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집행유애가 패러디 곡이라서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아쉬운 게, 90년대댄스음악의 주요 특징을 예리하게 집어내어 과장되지만 사실적으로 재현하여 청자들에게 공감을 넘어 감탄사까지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보정이며 코러스며 싹 무시한 생 보컬, 과한 에코가 들어간 사운드, 박력있고 정직한 비트감이 느껴지는 랩, 2절 중간에 뜬금없는 비트박스까지 90년대 댄스 음악의 촌빨 날릴만한 특성은 다 들어있다. 집어내지못한 요소들이 더 있겠지만 이 정도로 90년대의 특징을 찾아내어 담아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 이게 90년대 음악을 일부러 흉내낸거구나.” 라고 인식하고 흥미유발이 되었던 것이다. 만약 위의 열거한 것들이 일부만 반영되어 있었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노래가 좀 촌스럽네.”, “좀 옛날 노래같네.” 정도의 반응 밖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90년대 음악의 촌빨 요소는 20년이 지난 2010년대에도 무의식적으로 발현될 수 있기 때문에, 작곡가들은 곡을 만들 때 이를 매우 경계해야한다. 이 촌빨 요소를 의도적으로 잘 사용하면 약간 복고적인 느낌이 나면서 듣기 괜찮은 음악이 되는 것이지만(용감한 형제 노래의일명 ‘뽕삘’이라고 하는 것이 그 예), 그렇지 않고 의식하지 못한 채 노래에 촌빨 요소가 섞여 들어간다면 사람들의 호감을 얻기는 이미 물건너간 노래가 될 확률이 90% 이상이다. 그만큼 90년대 음악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일은 그 이전 시대 음악을 흉내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정교함이 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집행유애'는 90년대 댄스음악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의미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1992년의 방송을 묘사한 뮤직비디오도 90년대 방송을 보는 것과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이어서,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곁들이면 훨씬 더 고퀄리티 패러디물로써 의미있는작품이 된다.

'파라다이스'는 올해들어 강한 상승세가 돋보이는 남자아이돌 그룹 인피니트의 곡으로 카라와 인피니트에게 노래를 많이주었던 스윗튠이 작곡했다. 2세대 아이돌 빅뱅을 기점으로 2000년대에 맞는 트랜디한 이미지가 중요시되는 아이돌 세계에서 (자신은 90년대 스타일이라는 것을 몰랐을 테지만) 90년대 스타일을 가진 아이돌은 대부분 나가떨어지고 말았지만, 인피니트는 오히려 단점일만한 요소를 희소성으로 무장하여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다.
'파라다이스'는 90년대 유행했던 에코가 강한 드럼 사운드, 일명 ‘동굴드럼’ 비트로시작한다. 노래 곳곳에 배치된 효과음도 최신 트렌디한 사운드와는 거리가 멀다. 인피니트의 노래가 대체로 90년대 스타일이 교묘하게 들어있었지만, 이번 '파라다이스'에서는 작곡가인 스윗튠이 대놓고 노렸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부러 노렸기 때문에 자칫 촌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요소를 없애나갔는데, 도입은 복고적인 사운드로 시작하는반면, 후렴부분은 현악기를 사용하여 웅장함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90년대 음악의 강점인 감성적인 멜로디라인을 부각시켜 최근 대중음악의 트렌드인 비트 중심 음악과 차별화를 두는 데 성공했다.
90년대 컨셉이라고 마냥 촌스러운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 가요 뿐만 아니라 팝 계에서도 대세가 된 힙합,R&B 등 흑인음악과 일렉트로니카 계열의 전자음악은 모두 멜로디 보다는 리듬과 비트에 중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대중음악의 황금기라고 불렸던 90년대 음악에는 감성적인 멜로디가 절정을 달렸다. 지금도 90년대 인기있었던 노래를 들으면 최신 가요와는 달리 진한 감수성을 느끼게 한다. '파라다이스'는 90년대 음악처럼 멜로디 라인에 중점을 두어 부각시키고 있으며, 단점이 될만한 요소는 현대적인 요소로 상쇄시키면서, 흔한 스타일의 댄스음악과는 다른 감성을 추구하고 있으며 대중에게 성공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이처럼 앞에서 소개한 두 노래는 같은 90년대 스타일의 댄스음악을 컨셉을 취하고 있지만, 그 지향점은 완전히 반대인 것을 알 수 있다.'집행유애'는 90년대 음악을 가감없이 표현하고 의도적인 촌스러움을 강조했다면, '파라다이스'는 옛날 느낌을 가져오면서 아이돌의 컨셉에 맞도록 세련됨을 잃지 않고 있다.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두 곡 모두 대중에게 호응을 얻으면서 90년대 컨셉에 대한 가능성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시대는 흘러서, 80년대생 청년들도 냉혹하고 치열한 기성사회로 발을 내딛고 있다. 5,6년 전만해도 옛날 생각난다고 하면 어른들한테 어린 것이 옛날 타령한다고 핀잔을 듣기 십상이지만, 이제는 많은 20대 청년들이 과거를 뒤돌아보며 학창시절의 즐거웠던 시절을 추억하곤 한다. 이따금씩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80~90년대 태어난 사람들이 어렸을 때 추억할 만한 물건이나 시대의 아이콘들을 주르륵 나열해 놓은 게시물들을 볼 수 있다. 피구왕 통키, 천사소녀 네티, 꾸러기 수비대 같은 인기 애니메이션 시리즈나, 치토스 안에 들어있던 따조, 깜찍이 소다 같은 한 때 인기있던 먹을 것들, 농구게임을 할 수 있는 철제 필통같이 학교다닐 때 많이 접했던 것들을 볼 수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즐거워했다.
90년대도 어느덧 10년이넘게 지나 추억 속의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반면 9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청소년들에게는 생소한 시대일 것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 90년대 컨셉은 그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80년대생 사람들에게는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것으로써, 그리고 90년대생 이후 사람들에게는 새롭게 경험하는 것으로써 당당한 복고 컨셉으로 자리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물론 지금부터 바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90년대 복고는 상품성이 낮다. 인피니트의 음악만 해도 90년대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노래를 여럿 내놓았지만, ‘우리는 90년대 아이돌을 컨셉으로 했다’ 라고 대놓고 광고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아직까지는 ‘간을 보고있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UV의 '집행유애'와 인피니트의 '파라다이스'에 대한 대중의 호응을 봤을 때 분명한 가능성이 있을거라 생각해본다.


덧글
어른이 2011/10/09 16:50 # 답글
잘봤습니다. 복고라는게 지금의 기성세대들이 젊었던 시절을 의미하니깐요. 80~90년대초반에 태오난사람들이 이제 20대에서 30대초반이 되엇죠. 아마 2020년즈음되면은 우리의 어린시절이 복고가 되어 돌아오겠죠.
블루모노레일 2011/10/10 23:14 # 답글
저 역시도 잘 보았습니다. 처음 새 글이 올라왔을때 최근 연예계 트랜드를 말하는 글 인줄로만 알았는데 글을 막상 읽어보니 그보다 더 재미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글 이였던 것 같군요. 개인적으로 글을 읽으면서 크게 공감한 부분도 있고 흔히 흥에 겨워 스쳐 지나갈 요소들을 많이 집어내신 것 같습니다.ㅎ